Fooled by Randomness
in Book on 나심탈렙
서사시의 영웅들은 결과가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받았다. 우리가 아무리 정교하게 선택하고 운을 잘 지배할 수 있다고 자만해도 결국 최후는 운이 결정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해결책은 품위뿐이다. 품위란 환경에 직접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계획된 행동을 실행한단 뜻이다. 그 행동은 최선이 아닐 수도 있지만, 분명히 최상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이다. 억압속에서 품위를 유지하라. 이는 아무리 보상이 크더라도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태도다. 불운에 슬퍼하지도 말고, 현실을 부인하지도 말라. 자신의 눈과 귀를 속이려하지도 말라. 공허한 희망으로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지마라. 그러나 감정에 휘둘린다면 의연할 필요는 없다. 감정 때문에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무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잘못은 품위 있는 길을 따르지 않는 데에 있다. 스토아 철학은 확률에 맞서려는 인간의 시도다.
감정이 활동을 시작하면 지성은 뒤로 물러난다. 따라서 현실 세계에서는 우리의 합리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자기 계발서들은 대게 무익하다. 아무리 현명한 조언이나 감동적인 설교라도 우리 본성과 어긋날 때는 곧바로 묻혀버리고 만다. 스토아 철학이 흥미로운 점은 우리의 본성인 품위와 탐미주위를 바탕에 둔다는 사실이다. 이제부터 불행을 만나게 되면 개인적 품위에 초점을 두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혜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라.
행운의 여신도 어쩌지 못할 유일한 대상은 바로 행동이다.
불확실성이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준다. 일정 수준의 불확실성은 결함 투성인 인간에게 혜택이 되기도 한다. 일정을 조금만 무작위로 바꾸면 지나치게 효율성을 높이려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불확실성을 조금만 더하면 시간 압박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 외부 압력때문에 시간의 노예가 되지 말자.
행복에 관한 어떤 연구에 따르면 최적화를 추구하면서 자신을 압박하는 사람들은 즐기는 동안에도 어느정도 고통을 받는다. 행복한 사람은 대게 충족을 추구하는 유형이다.충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원하는 바를 미리 정해놓고 충족을 얻는 순간 멈출줄 안다. 목표를 달성해도 욕망을 계속 키워나가지 않는다. 생활 수준이 향상되더라도 이에 따라 소비 수준을 끊임없이 높이려고 하지 않는다. 탐욕스럽지 않기 때문에 충족할 줄 안다.
인간이 정확한 일정에 적합한 존재가 아니다. 일이 없는 동안 편안하게 뒹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야한다.
불확실성은 삶의 질을 개선 시켜 줄 뿐만 아니라 정보 면에서도 가시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우리 행동을 어느정도 예측하지 못하게 하면 갈등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임계점을 임의로 변경하여 과잉 반응의 강도조차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어야한다. 예측 할 수 없게 만들면 분쟁을 강력하게 억제할 수 있다.
남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마라(황금율). 나머지는 모두 주석에 불과하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운 좋은 바보들이다. 운은 준비된 사람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성공의 필요 조건과 충분 조건을 혼동하지마라. 물론 필요 조건은 중요하다. 그러나 무작위 사건이 발생하는 세계에서는 중요도가 떨어진다.
실패의 대가가 지나치게 클 때 아무리 자주 성공을 해도 소용없다.
직업을 평가할 때에는 성공한 표본 몇 사람뿐만 아니라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평균을 고려해야한다.
한 분야의 실적은 결과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며,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경우의 대체 비용(대체 역사)도 고려해야한다.
잠재된 위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가 생성되는 모습에만 집중하느라 그 과정을 보지 않기 때문에 위험을 간과하게 되고, 실패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된다.
영웅이 영웅이 된 것은 전쟁의 승패 때문이 아니라 행동이 영웅적이기 때문이다.
확률적 사고가 선정적 미디어에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뉴스를 보지 않고 지내는 편이 정보 측면에서 이득이다. 미디어는 오늘날 우리가 맞이한 최대의 저주가 되었다. 세상은 갈 수록 복잡해지는데, 미디어는 갈수록 우리의 생각을 단순화 시키고 있다. 빌려온 지혜는 틀리기 쉽다.(이 글을 포함해서)
상식은 18세까지 습득한 오해의 종합체에 불과하다 - 아이슈타인
가장 큰 위험은 크게 성공하는 것이다. 언젠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한다.
수학은 사고의 도구이지 계산의 도구가 아니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역사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역사가 주는 교훈을 무시한 사람들이 가장 처참하게 파산했다. 실현된 결과를 볼 때 실현되지 않은 결과도 반드시 살펴라.(역사 종합)
우리의 사고는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보다는 재빨리 곤경을 모면하면서 결과를 얻도록 설계되어있다.
실수란 사후적으로 평가할 대상이 아니라, 당시까지 존재한 정보를 바탕으로 평가할 대상이다.
중요한 사건들은 예측 불가능하다.
능력이 있는데도 인생에서 불운을 맞이한 사람들은 결국 다시 일어서게 될것이다. 운 좋은 바보는 인생에서 운의 덕을 보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점차 불운한 바보들과 비슷한 상태가 될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장기 속성으로 돌아가게 된다.
의미 없는 소음(언론)을 제거하고 제대로 된 정보(역사)를 바탕으로하는 정제된 생각이 중요하다. 최신 기사들은 잡스러운 반면, 고대의 사상들은 단정하다. 어떤 아이디어가 수많은 순환기를 거쳐 오래 생존했다면, 이는 상대적으로 잘 적응 했음을 말해준다.(안티프래질)
대중 매체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소음을 제공하여 돈을 번다. 뉴스는 예측력을 높이거나 세상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자는 의미에 귀를 기울이고 바보는 소음만 듣는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정보(대부분 소음)에 접근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중요한 사건이라면, 어떤 경로로든 내 귀에 들어올 것이다.
운의 속성 중 하나는 시간 단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시간 단위가 짧으면 실적이 아니라 변동성을 보게된다. 즉, 편차만 볼 뿐이다. 기껏해야 편차와 수익이 뒤섞인 모습을 보는 것이지 수익을 보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빈번하게 수익율을 확인하는 것보다 1년에 한번 수익율을 확인하는 것이 심리적 적자를 줄일 수 있다.
심리적 적자 : 손실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은 이익에서 오는 기쁨으로 상쇄되지 않는 법이다. (손실의 부정적 효과는 이익의 긍정적 효과보다 2.5배 크다.)
재산을 얼마나 모았느냐보다 어떤 방법으로 모았느냐가 행복에 더 중요하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까지 합리적이고 과학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해를 입히고 생존을 위협하는 경우에만 합리적이면 된다. 현대 생활은 우리를 정반대 방향으로 몰고 가는 듯하다. 종교나 개인적 행동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성적이 되는 반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처럼 운에 지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합리적이 된다. 운에 속아야한다면 아름답고 해롭지 않은 운에 속는 편이 낫다.
성공한 사람들은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던 기간에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뿐이다.
어떤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도 다행히 희귀사건이 없는 표본 경로를 잘 만나 생존했을지도 모른다. 희귀 사건을 만나지 않고 지내는 기간이 길어질 수록 이들은 희귀사건에 취약해진다. 시간을 무한대로 연장하면 에고르딕성에 의해 사건이 확실히 발생하게된다.
평균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댓값과 중앙값은 전혀 다른 뜻이다. 결과가 비대칭이라면, 평균값은 중앙 값과 전혀 관계가 없다. 확률이 비대칭적이라 함은 두사건의 확률이 50%가 아니라, 한 사건의 확률이 다른 사건의 확률보다 높다는 뜻이다. 결과가 비대칭이라 함은 그 사건에 대한 보상 수준이 같지 않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안정된 모습으로 보였떤 통화가 가장 붕괴되기 쉽다. 문제는 역사 전반이 아니라 최근의 역사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면서 ‘전에는 이런 일이 전혀 없었다’라고 주장하는데 있다. 과거에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도 반드시 일어난다는 사실을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시계열을 넓게 확장하면 우리는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시야를 넓힐수록 더 훌륭한 교훈을 얻는다. 고요한 바다를 조심하라. 희귀사건은 과거 시계열을 너무 좁게 해석하여 위험을 오해하는데서 비롯된다. 희귀사건은 항상 예상 밖에서 일어난다.
과거의 정보가 미래 예측에 전혀 쓸모 없을 수 있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예측 가능한 패턴을 파악해서 그것을 변형하여 적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간은 지식에 따라 행동하는데 지식은 과거 데이터를 통합한 것이다. 패턴을 찾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패턴이 발견되는 순간 스스로 소멸되기 때문이다.
백조를 아무리 많이 관찰했더라도 모든 백조가 희다고 추론할 수는 없다. 단 한마리의 검은 백조가 발견되더라도 이 결론을 충분히 반증할 수 있다.
통계라는 과학이 이득이 된다면 주저 없이 사용할 것이다. 반면 내게 위협이 된다면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 위험 없이 과거를 최대한 이용하고 싶다. 따라서 통계학과 귀납적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지만 위험을 관리하는 용도로 사용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아질 수록 정보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쉽다. 확률에 대해 어설프게 알면 전혀 모를 때보다 더 안좋을 수 있다.
우리는 오로지 승자만 볼 수 있다. 실패한 사람들이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생존자만 보게 되며 그래서 확률을 잘못 인식하게 된다. 사람들은 확률이 아니라 승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반응하게 된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공동체에 소갷서 산다. 그래서 자신이 살고 있는 좁은 거주지를 벗어나 넓은 관점에서 자신을 평가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적 쳇바퀴 효과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
풍요로운 생활에 익숙해지면 만족의 기준이 높아진다. 때문에 재산으로는 절대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본래 합리적인 생각을 하기도 어렵고 사회적 모욕감을 참기도 어렵다. 합리적 인간이 된다고 위안을 얻는 것이아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순전히 이기적인 행위이지, 공익적 행위가 아님을 기억해야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장점은 박애가 아니라 탐욕을 이용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탐욕을 찬양할 필요까지는 없다.
우리는 수많은 대체역사 가운데 실현된 사건 하나를 보고 이를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생존 편향은 실적이 가장 좋은 사건이 가장 눈에 잘 띈다는 뜻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유명해져서 전면에 등장하지만, 실패한 사람들은 분석에서도 사라진다.
에르고딕성 : 시간이 지나면 운의 효과가 사라진다.
실패는 운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공을 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를 찾아오는 투자 기회를 평가할 때에는 내가 주도적으로 찾는 투자 기회를 평가 할때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한다.
단지 아무 관계나 찾아보려고 컴퓨터에 데이터를 퍼붓는다면, 주식 시장과 치마 길이의 관계처럼 단지 우연한 관계가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다. 무작위 데이터에는 항상 패턴이 존재한다. 음모론이 구성되는 매커니즘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임의성은 이론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얻을 수 없다. 실제로 어떤 데이터에 비임의성이 전혀 없다면, 이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크다. 단일 임의 실행에도 자세히 보면 반드시 패턴이 나타난다.
운을 무시하며 어느 시점에서든 20년 동안 투자하면 시장이 반드시 상승한다라고 멍청한 말을 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인생은 비선형적으로 불공평하다. 인생에서 약간의 강점으로도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전혀 강점이 없는 사람도 아주 조금만 운의 도움을 받으면 노다지를 캘 수 있다는 것이다. (모래 더미 효과: 모래성에 가해진 힘은 성형적이었지만, 모래성을 무너뜨린 것은 비선형적)
경로 의존 효과 : 기술적 우위가 아니라 우연한 사건과 긍정적 피드백이 결합하여 경제적 성공을 결정.
수학은 현실 세계를 다루는데 있어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운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수학은 단지 생각하고 명상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비선형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인간의 두뇌는 비선형성을 이해하기에 부적합하다. 인과관계를 선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비선형성의 예 : 1년 동안 공부해도 전혀 배우지 못할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비선형성 때문에 사람들은 희귀사건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운에 좌우되지 않고 성공하는 길이 많음에도 끝까지 끈기를 발휘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남들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이 보답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 보상을 받기 직전에 포기해버린다. (티핑 포인트)
수백명으로부터 호감을 얻는 것보다 십여명한테 사랑을 받는 편이 낫다.
사고는 착각을 일으키며 엄청난 에너지 낭비일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최적화를 시도한다면, 무한한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갈 것이다. 따라서 최적화 작업은 어딘가에서 중단되어야만한다. 충족에 가까운 답을 얻으면 최적화를 중단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결론이나 행동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확률적 사고와 최적화된 행동을 하지 못한다.
기준을 0으로 재설정해서 하루나 한달을 새로 시작하는 행태는 현실을 가장 심하게 왜곡하면서 가장 심각한 결과를 부르는 행태다. 사람들은 항상 기준을 재설정하기 때문에 재산 자체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기준점 효과 때문에 사람들은 순자산 총액 대신 어떤 기준 금액으로부터의 증감에 반응한다.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대신 행동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통계를 조작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고, 자신이 틀릴 확률은 과소평가한다.
문제는 아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확률은 승산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결과,원인,동기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수학은 계산 도구가 아니라 명상 도구이다.
진리가 하나뿐이라는 것은 거만한 신념이다.
자신의 과거 신념에 전혀 얽메이지 않는 사람. 경로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과거 행동에 전혀 구속받지 않고 하루하루를 백지상태에서 시작. 처음 얻은 신념이 너무 강해서 계속 유지 될 때, 그 신념에 얽매인다고 말한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은 위대하지만 과학자 개개인은 위험하다.
스토아 철학은 무작위 사건을 맞이 할 때 자신의 운명을 최대한 통제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인간은 운명이 부여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 할 수 있다. 결국 불확실성에 대항하는 선택권이 항상 있다는 뜻이다.
기업에서는 서열이 올라갈 수록 기여도가 낮아진다. 능력의 가시성은 업무에서 운이 얼마나 좌우하느냐와 개인의 기여도를 얼마나 구분해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능력을 들어내는 열쇠는 반복성(에르고딕성)이다. 표본 경로가 아주 길어지면 결국 서로 닮게 된다. (대수의 법칙)